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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마리텔>의 성공 비결은?

[기고]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성공 비결은?

 

요즘 지상파 예능 제작진은 콘텐츠를 지상파답지 않게 만들 필요가 있다. 지상파가 지상파처럼 만든다는 말은 지상파가 가진 종래의 권력과 관습, 소통방식을 그대로 활용한다는 의미다. 미디어 플랫폼이 지상파 중심에서 케이블 채널과 인터넷, SNS, 모바일로 다양화된 시대에는 그런 제작방식으로는 시청자의 호응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대신 “아직도 정신 못차렸구만”이라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누구나 콘텐츠만 좋으면 미디어의 중심에 설 수 있다. 인터넷 방송인 아프리카TV가 유승준의 심경을 인터뷰해 내보냈을 때는 지상파 못지 않은 파급력을 지니게 된다.

 

지상파 PD들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왜 제작에서 이러한 점들이 반영되지 못하는 것일까? 이건 지상파 예능 제작진의 능력 문제가 아니라,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유연성과 센스의 문제다. 집단 협업제작방식에서는 조직의 유연성까지 포함되는 문제다.

 

지상파 예능 콘텐츠는 거의 제작진의 머리에서 기획해 던지는 아이템들이다. 이런 아이템들은 소통방식에서 일방적이다. 여기서 다뤄지는 아이템들을 시청자들이 가지고 놀 수 있도록 해줘야 쌍방향이다. 이제 지상파 예능이 출연자에 의지해 웃기려는 방식은 벗어나야 한다. 찰나적인 재미는 인터넷과 모바일을 따라가기 힘들다.

 

 

결국 쌍방향 콘텐츠, 다시 말하면 시청자를 배려하는 콘텐츠가 살아남는다. 출연자를 배려하는 콘텐츠, PD가 출연자에게 쉴드를 쳐주는 콘텐츠는 망할 수밖에 없다. 출연자의 말을 다 들어주는 토크쇼는 시청률이 3~4%대다. 그러니까 시청자를 배려하는 출연자 섭외, 시청자가 궁금해하는 질문부터 던지는 콘텐츠, 시청자가 하고싶은 말을 알려주고 여기에 대해 반응해주는 콘텐츠가 요즘 지상파 예능이 가야 할 방향이다.

 

이런 흐름을 잘 캐치해 가장 주목받고 있는 프로그램이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다. ‘마리텔’은 지상파가 겸손해지는 시그널이다.

 

지상파 예능을 보면 PD와 스타를 배려하는 장치들이 곳곳에 들어가 있는데(심지어 스타들을 굶기고 힘들게 하는 것도 알고보면 스타를 배려한 장치다), 여기서는 오히려 네티즌을 우선 배려하고 특별 대우한다. 담당 PD는 채팅 참여자를 제 2의 MC라고 여길 정도다. 네티즌의 공격적인 글에 의해 출연자들이 무안을 당해도 어쩔 수 없다.

 

기자는 ‘마리텔’을 보면서 가장 재미있는 건 채팅창에 올라오는 글을 올려주는 자막이다. 생각보다 공격적인 글들이 많다. 출연자가 이들 채팅 글들로 인해 약간 열받으면 더욱 재미있어진다. 채팅창에 ‘노잼’ 정도의 글만 올리면 출연자는 바로 ‘멘붕’이다.

 

 

하지만 이런 글들에 대해 짜증을 내기보다는 어느 정도 즐겨야 한다. 이걸 즐기는 건 공자나 맹자 아니면 엄청난 내공의 고수들이나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방송에서 차마 짜증은 내지 못하고 약간의 투덜거림으로 소통을 해나가는 백종원의 방식이 가장 솔직하면서 봐줄만한 대응책으로 보인다.

 

씨스타 다솜은 ‘핵노잼’ 노이로제 현상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걸그룹이 화를 내면 최악이다. 다솜은 “지적인 사람은 지적을 아낀다”며 좋은 말을 해줄 것을 당부했다.

 

기자는 이은결의 일루전 마술을 공연장에서 본 적이 있다. 스토리가 있는 일루전 마술을 미리 준비한 대로, 연습한 대로 깔끔하게 해낸다. 하지만 ‘마리텔‘에서는 또 다른 이은결을 봤다. ‘사기’ 운운하는 채팅창을 보면 사람인 이상 열을 받게 된다. 비둘기와 인간을 합성한 ‘인둘기’ 마술을 선보일 때도 “조작, 사기” 채팅글이 올라온다. 이은결도 약간 페이스가 말리는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 하지만 괜찮았다. 공연장에서는 정제된 마술을 보여줬다면, 손에서 피까지 난 ‘마리텔‘에서 선보인, 다소 거칠지만 현장감이 살아있는 그의 마술도 또 다른 재미를 주었다.

 

 

‘뒤태종결자’ 예정화가 아이유의 ‘좋은 날’을 낮은 키로 부르자 채팅창 자막에는 “제부도 주민님 미안합니다” “고막아 미안해” “고막에 근육 생김” 등의 글들이 계속 올라온다. 이런 글 읽는 재미로 ‘마리텔’을 본다.

 

‘마리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미있고 쓸모있는 콘텐츠를 보여줄 것, 하지만 콘텐츠만 선보일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채팅창에 올라오는 반응들에 대해 계속 대화해주는 소통력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AOA의 초아와 EXID 하니는 집에서 열심히 준비해왔지만, 네티즌들과 소통하는 멀티태스킹 능력은 미약했다.

 

이런 전반적인 상황을 가장 잘 처리하는 사람은 놀랍게도 중년인 백종원이다. 그는 이제 채팅에 올라오는 글에 반응하는 정도를 벗어나, 이를 정리해준다. 뻔한 ‘(애)드립’은 상대도 안하는 ‘드립‘ 대법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드립중에서 쓸모있는 드립만 가려 읽어, 채팅방이 가야 할 길을 선도하신다.

 

 

‘마리텔‘에 출연했던 사람들이 하는 한결같은 말은 “너무 힘들다” “영혼이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그건 당연하다. 지금까지는 그런 프로그램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배려해주는 프로그램, 시청자 게시판에 항의 글을 올리면 다 지워버리는 그런 프로그램에 출연했으니, 쉬울 수 밖에 없었다.

 

이제 그렇게 쉬운 프로그램은 시청자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시청자를 배려하는 콘텐츠라야 살아남는다. ‘마리텔’속  작은 방송국들이 시청자를 위해 치열하게 대결을 벌이는 모습은 그래서 아름답다. ‘마리텔’의 인기는 곧 지상파의 위기를 의미한다.

 

서병기 <헤럴드경제신문 대중문화전문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