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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주 작가]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시사회 리뷰

이상한 나라에서 이상한 며느리로 살 수 있을까

 

그런 말이 있었다. ‘19세기의 교실에서 20세기의 교사가 21세기의 학생들을 가르친다.’ 시대에 뒤떨어지는 교육현장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두루두루 비판하던 말로 기억한다. 아이와 나란히 앉아 리모컨으로 TV 채널을 돌리다 문득 떠올랐다. 이제 ‘22세기의 시청자가 21세기의 TV20세기의 콘텐츠를 본다.’

 

유독 가족을 그리는 방식이 그렇다. 거실 가득 펼친 좌식 밥상에 3대가 모여 저녁밥을 먹는 동안 앞치마를 두른 집안 여자들이 부지런히 음식을 나르는 주말드라마의 한 장면, 가사와 육아에 무관심하다 못해 아내에게 폭언까지 퍼붓는 남편의 사연이 고민인지 아닌지 판별하자는 프로그램, 토크쇼에 나와 아내의 속옷을 남편의 속옷 위에 올려놓은 며느리를 혼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중견 연기자. 이 모두를 모공까지 보이는 초고화질에 다 익히지도 못할 각종 기능을 탑재한 스마트 TV로 보고 있는 현실이 참 아이러니하다.

 

몇 년 사이 당연한 줄 알았던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을 많이 만났다. 딸로, 아내로, 며느리로 살며 경험했던 불합리한 관행들이 떠올랐고 화해와 가족애로 얼버무린 가족 서사가 오히려 불편해졌다. 비슷한 문제의식을 담은 콘텐츠들도 쏟아졌는데, 웹툰 며느라기도 재밌게 봤고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 ‘며느리 사표같은 책들도 푹 빠져서 읽었다. TV 시청이 유일하고 절대적인 취미활동인 TV 마니아로서 이런 TV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중에 드디어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를 만났다.

 

 

 

이상한 나라의 세 며느리는 전혀 다른 상황에 놓여있다. 얼굴이 알려져 있는 연기자 며느리와 불규칙적으로 바쁘게 일하는 남편을 둔 며느리, 일과 생활 모두를 시댁과 공유하는 며느리. 갈등 요인도 감정도 제각각인데 세 사람뿐 아니라 스튜디오에 있던 모든 며느리가 관찰 영상의 장면 장면마다 입을 모아 맞아, 맞아”, “뭔지 알 것 같아를 외친다. 나 역시 그랬다. 화면을 보는 내내 같이 답답하고 속상하고 화가 나다가 결국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문제는 며느리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가 이상한 나라라는 데에 있고, 우리는 모두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이기 때문이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딸을 시댁에 인사 보내는 친정엄마는 이바지 음식을 보따리 보따리 장만한다. 딸과 엄마는 눈물 바람인데 선량하고 다정한 새신랑은 아내의 무거운 마음을 좀처럼 알지 못한다. 집안 남자들이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는 동안 여자들은 음식을 준비하고, 새색시는 시키는 사람도 없는데 낯선 주방을 떠날 줄 모른다. 그렇게 며느리가 된다. 명절 때면 자연스럽게 남편의 집으로 먼저 가 쉴 틈 없이 일한다. ()이 다른 며느리들이 차례 음식을 다 만들고 상도 차려내면 그제야 남자들이 나타나 절을 올린다. 며느리는 못 자고 못 먹고 못 쉬는 게 당연하고, 온 가족 모이는 명절이라는데 내 가족 모여 있는 친정에 가기는 눈치가 보인다.

 

 

낯설지 않다. 시어머니가 악랄하게 며느리를 괴롭히는 것도 아니고 남편이 아내에게 순종을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사소하고 악의 없는 습관일 뿐이다. 그로 인해 상처받고 고통스러운 이들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그저 사소하고 악의 없는 습관일 뿐이라며 지워져 버린 질문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그 질문을 던진다. 진행자 이현우 씨가 조심스럽게 뱉은 한 마디는 지금, 여기, 우리에게 이 프로그램이 왜 필요한지를 아주 잘 설명해 준다. “익숙한 장면인데 이런 식으로 보니까 많은 걸 느끼게 하네요.”

 

 

두 남자 진행자는 권위적이거나 가부장적인 남성들이 아니다. 가족을 사랑하지만 관습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왔던 평범한 아들이자 남편, 아버지의 입장을 대변한다. 무지했고 그걸 깨달았고 그래서 당황하고 부끄러워하는 그들의 솔직한 태도에서 함께 바꿔갈 수 있다는 희망이 보였다. 성차별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 남성과 성 평등한 감수성을 지닌 여성들이 갈등하고 대결하는 시간이 아니라 불쾌와 분노를 덜어내고 그 자리에 공감과 깨달음을 채워나가는 시간. 이런 이야기가 좀 더 많아지면 좋겠다. 오래 계속되면 좋겠다.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