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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총결산] 월드컵은 씁쓸했다, 하지만 즐거웠다! "축구는 예능"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높은 인기를 누렸던 MBC의 ‘축구는 ㅁㅁㅁ 다’ 시리즈가 브라질에서도 빛을 발했다. ‘날두고 떠난 (호)날두’부터, ‘빈대떡 신사’ ‘END가 아닌 AND’까지, 경기 내용을 한 마디로 압축하면서 위트 있고 유머러스한 표현들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2014 ‘축구는 ㅁㅁㅁ 다’ BEST를 뽑았다.

 

 

F조 예선 경기가 치러진 6월 22일, 아르헨티나와 이란의 경기 후 ‘축구는 메시가 걷어찬 이불이다’라는 자막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시간을 끄는 수비축구, 이른바 ‘침대축구’로 이름난 이란을 상대로 메시(아르헨티나)가 골을 넣은 것을 ‘이불이 걷혔다’고 표현한 위트가 돋보였다. 배경음악으로 김광석의 ‘일어나’를 삽입한 제작진의 위트 있는 선곡도 화제만발이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경기로 브라질이 독일에게 7:1로 대패한 준결승전을 꼽는 이들이 많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경기에 MBC는 ‘축구는 아마존의 눈물이다’라는 재치 있는 한줄평을 남겼다. 선수들의 황망한 얼굴과, 실망감이 역력한 브라질 응원단의 모습이 교차하는 영상 뒤로 깔린 성가 ‘아베마리아’의 웅장한 선율이 심금을 울렸다.

 

 

 

 

 

안인용 TV칼럼니스트

 

 

월드컵은 씁쓸했다, 하지만 즐거웠다

 

 2014 브라질 월드컵이 막을 내렸다. 우리의 월드컵은 조별 예선에서 일찌감치 접혔고, 브라질의 월드컵은 4강에서 무참히 꺾였다. 월드컵 특수도 씁쓸하긴 매한가지였다. 특집 방송을 위해 브라질을 찾은 각사의 예능 프로그램들은 기대했던 명장면을 만들지 못했다. 우리 대표팀의 결과가 좋지 않기도 했지만, 유명 예능인이 현장을 찾아 응원을 펼치는 익숙한 포맷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도 크다.

 

 올해는 월드컵 특집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유달리 시들했고, 이 관심은 오롯이 중계진에게 쏠렸다. 시청자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세 개였다. ‘차붐’ 부자와 배성재 캐스터의 호흡이냐, ‘초롱이’ 이영표의 해설이냐, 아니면 민율이·리환이·지아 아빠가 뭉친 ‘아빠! 브라질 가?’ 팀이냐. 지난 한 달간의 성적표를 보면 KBS와 MBC의 2강 체제가 뚜렷하다. 초반에는 과열 양상도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두 방송사의 시청률 경쟁은 가뜩이나 화제가 없었던 이번 월드컵의 몇 안되는 이야깃거리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

 

 

안정환, 이토록 ‘때땡큐’한 방송인이라니!

 

 월드컵 기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단 한 명의 MVP를 꼽으라면 단연 안정환이다. 강력한 경쟁자였던 이영표가 해설 쪽에서만 빛을 발했다면, 안정환은 해설과 예능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활약했다는 점이 선정 이유다.

 

 안정환은 반전의 사나이다. 그라운드의 테리우스로 불렸던 그는 <아빠! 어디가?>에서 덥수룩한 수염과 두툼한 살집에 ‘잘생김’을 빼앗긴 ‘슈퍼마리오’로 재발견됐다. “때땡큐” “가랭이슛” “쫑나다” 등 저렴한 언어구사력과, 내 여자에게만큼은 한없이 따뜻한 로맨티스트의 면모도 마성의 매력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이번 월드컵에서 응원석이 아닌 중계석에 앉았다는 점이다. 예능 캐릭터가 있었기에, 날것 그대로의 단어나 표현을 사용해도,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 명치에서부터 올라오는 짜증과 한숨을 내뱉어도, 그 자체가 웃음과 공감으로 전해졌다. 필요할 때 짧고 굵게 경기의 맥을 짚는 모습에서는 국가대표 골잡이 출신의 진지함이 엿보이기도 했다. 그가 해설하는 경기를 본다는 것은 예 능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기도 했다. 축구를 본편으로, 예능을 부록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축구라는 본편을 예능으로 보는 것. 이것이 바로 안정환과 MBC가 이끌어낸 중계 패러다임의 변화이자 월드컵을 소비하는 새로운 패턴이 아닐까 한다.


 우리나라의 스포츠 중계는 예능의 문턱을 거의 넘어섰다. 올림픽을 2년 앞둔 지금, 각 방송사는 해설위원을 예능인으로 길러내는 것이 예능인들을 현지로 보내는 것보다 더 현명한 선택임을 인정하고 중계진의 예능 특훈에 돌입해야 한다. 안정환 같은 ‘때땡큐’ 방송인이 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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