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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독 광부· 간호사> 그들의 삶은

"독일에서 40년 사신 분이 한국말을 어떻게 그렇게 잘 하시냐 물어요"

 

경상남도 남해군의 한 마을. 바다와 접한 이 곳엔 태극기와 독일 국기가 휘날린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들이 주로 산다. 지난 1960~70년 대 독일로 파견됐던 50명 가까운 광부와 간호사들. 이 마을의 이름은 바로 `남해 독일 마을`이다.

 

40여 년의 독일 생활을 접고, 지난 2007년 한국에 돌아온 이 마을 주민 김두한 선생. 그동안 발전한 고국의 모습에 흐뭇함을 느끼지만, 한편으론 낯설기도 하다.

 

독일인도, 한국인도 아닌 이방인으로서의 존재감에 회의를 느끼는 것.

 

"우리가 여기 와서 살아도 이방인이야. 내가 한국 사람인데 한국에 살아도 국민들도 이상하게 보고. 독일에서 40년을 살았다니까 어떻게 그렇게 한국말 잘하냐고 물어요"

 

 

김두한, 이경자 씨 부부

 

김 선생의 부인인 이경자 씨. 지난 1970년 독일로 떠난 남편이 광산촌에서 다이너마이트를 운반하는 일을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녀는 남편 혼자 둘 수 없다는 생각에 간호사 자격을 따고 독일로 갔다. 현지에서 병으로 딸을 잃고, 이를 악물고 시작한 레스토랑 사업이 성공을 거뒀다. 이 부부는 남해에서 향토 장학금을 쾌척하는 등 지역 인재 양성에도 나서고 있다.

 

김 씨 부부처럼 고국행을 택한 사람들도 있지만 독일에 남아 있는 사람들도 많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주목받고 있는 축구선수 손흥민(레버쿠젠). 그를 응원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파독 광부 현우수 선생.

 

"참 영광스럽습니다. 인삼차라도 한 잔 더 먹여서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건강하고 활달하게 했으면 하는 마음은 마찬가질겁니다. 외국 생활하면서 대한민국 국기가 TV에 올라갈 때는 눈물 안 흘리는 사람이 없어요"

 

 

현우수 씨(사진 위)와 한상모 씨(사진 아래)

 

광부를 그만 두고 독일에서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도 있다. 광부로 근무하던 시절, 돈을 더 벌어야겠다며 식당 접시닦이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한상모 씨. 그는 베를린 최고급 레스토랑의 최고 셰프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그의 음식을 맛보기 위해 독일 전 대통령도 다녀갔고, 심지어 고르바초프도 이 곳을 찾았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 대부분은 현재 70~80대. 은퇴 후 건강하고 편안하게 노년을 보냈으면 하지만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 광부,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얻은 질병이나 사고 때문에 고국 나들이 조차 쉽지 않다.

 

광산 작업 도중 생긴 사고로 한 쪽 다리를 잃은 김태수 선생. 그를 지켜온 아내 이숙자 씨는 고국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한다.

 

"여기서 집세 몇 푼 안 되는 거 매달 송금하더라도 우리 생활하고, 우리는 한국에 아무 것도 없잖아요. 그리고 이 의족이 자주 고장이 나는데 뭘 갖고 고쳐요"

 

재독장애인협회 관계자의 말. "의료보험이 유럽은 다 커버가 되지만 한국은 커버가 안되죠. 그래서 건강이 약한 분들은 굉장히 두려움을 가지고 가서 2주 이상을 있지를 못해요. 무슨 일이 언제 터질 지도 모르고.."

 

 

파독 광부 출신 김태수 선생. 광산 작업 도중 한 쪽 다리를 잃었다. 의족을 달고 사는 그는 지금도 병원 신세를 져야한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파독 근로자들의 생활 이면에는 아픔과 상처가 가득 배어 있다.

 

12월16일 밤 11시20분에 방송되는 MBC 다큐스페셜 <파독광부 50주년 특집-파독 그 후, 50년>.

 

독일 사회에서도 한국인으로서 뿌리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파독 광부와 파독 간호사, 그리고 2세들. 차츰 잊혀져 가는 그들의 눈물과 아픔은 물론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글. 정책홍보부 류의성(esryu@m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