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는 창 – MBC 뉴스 50년

1970년 가을, <뉴스데스크> 첫 방송은 한국 TV 뉴스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 이었습니다. 앵커의 등장은 신선한 파격이었습니다. 방송기자들은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고 현장으로 뛰어 나갔습니다. 상대 방송사가 앵커 시스템을 뒤따라온 건 2년 반이나 더 지나서 였습니다.

당시 앵커 시스템을 기획한 김기주 前 전무의 증언입니다. “<뉴스데스크>같은 형태의 뉴스는 말하자면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겁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누구나 할수 있을 것 같지만 당시 방송뉴스로서는 혁명적인 것이었습니다. 앵커 시스템의 뉴스, 또 취재기자가 자기가 취재한 것을 자기가 보도하는 형식은 처음이었죠”

이후 MBC는 수많은 스타 앵커를 배출합니다. 철저한 구어체와 단문을 고집한 故 이득렬 앵커는 70,80년대 한국 방송의 얼굴이었습니다.  “여러가지 아름다운 긴 말보다는 짧은 진실이 뉴스에서는 제일이구나 하는 경험을 안고 떠납니다”  그가 14년 동안 지킨 <뉴스데스크> 앵커에서 물러나며 남긴 마지막 멘트입니다.

1973년 시작한 뉴스데스크 <카메라 고발> 코너는 신문 기사와 분명한 차별성을 보이며, 방송 저널리즘의 영역을 개척했습니다. 한 컷 한 컷 생생한 현장 화면과 군더더기 없는 멘트는 시청자들에게 이제껏 보지 못한 강한 인상과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무게를 늘리기 위해서 소에게 물을 먹입니다” “분명 겉은 복숭아 통조림인데, 속에서 닭고기가 나옵니다”  화면을 설명하는 기자의 목소리는 더 이상의 수사(修辭)를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카메라 고발>은 <카메라 초점>을 거쳐 <카메라 출동>으로 이름을 바꾸며 TV 고발 뉴스의 전범이 됐습니다.

1980년대, MBC 뉴스는 시청자들의 충실한 눈과 귀가 되지 못했던 부끄러운 역사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무력 진압하고 등장한 군사 정권은 이른바 <보도지침>등을 통해 언론을 통제했고, MBC 뉴스 역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1992년은 MBC 뉴스가 선거 방송 역사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해로 기억됩니다. 당시 대선을 앞두고 <선거방송기획단>이 출범하면서 선거방송 기획과 예측, 기술과 진행의 모든 과정을 전담하는 체제가 갖춰졌습니다. 이때부터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 등 MBC의 모든 선거방송은 ‘선택’이라는 로고를 채택해 ‘선택92’(대선)  ‘선택95’(지방선거) ‘선택 2012’(총선) 등으로 지금까지 쓰이고 있습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MBC 뉴스의 지평은 더욱 확대됐습니다. 1994년 2월 27일, 시청률 24%를 기록하며 출발한 <시사매거진 2580>은 TV 주간 보도 프로그램의 역사를 열었고, 1999년 10월 문을 연 <100분 토론>은 과감한 주제 선정과 끝장토론 등 파격적인 시도로 시사토론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2001년 봄 첫 방송을 시작한 <미디어비평> 역시 한국 언론의 묵시적 성역이었던 상호 비평을 기치로 내걸고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방송 100회를 돌파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MBC 뉴스는 뉴스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점점 허물어지는 디지털 미디어 시대와 종합편성 채널의 등장 등 새로운 변화와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MBC 뉴스는 늘 변화를 선도하면서, 현장에서 정직하게 시대를 기록하며 시청자 여러분들과 함께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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